두산중공업 사태와 ‘X맨’ 보수언론 / 석광훈

작성자: admin - 2020.04.13

국내 보수언론이 세계 각국에서 수출 요청을 받는 국내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장비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 원전시장 붕괴 상황은 외면한 채 국내 원전설비 업체의 실적 저하에 대해선 ‘애국주의’를 내세우며 ‘정부의 탈원전정책 탓’을 부각하고 있다. 경영위기를 맞은 두산중공업(이하 두중)의 대내외 여건에 대한 객관적 검토도 없이 원자력계, 일부 정치권, 몇몇 언론사는 두중의 원자력 부문을 살리기 위해 신한울(울진) 3, 4호기를 건설해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국내 보수언론의 묻지마 식 ‘문재인 탓’ ‘탈원전 탓’은 객관적 사실로부터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권과 기업체들에 잘못된 신호를 주기에 위험하다. 두중의 신규 수주실적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부터 원전 부문 비중이 10%대로 낮아졌고, 해외 석탄화력사업이 80%대에 이를 정도로 오래전 변화된 상태다. 두산의 원자력 관련 대내외 여건은 국내 보수언론이 즐겨 하는 한-일 비교를 해보면 더 확연해진다. 두중과 비교해볼 만한 일본의 업종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증기터빈 등 이른바 대형 단조 업체와 발전설비 업체들로 나눌 수 있다.

일본제강소는 지난 수십년간 원전 관련 대형 단조제품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약 80%로 압도적인 지위를 유지해왔다. 두중조차도 원전 부품에서 납기를 제때 못 맞추거나 불량이 발생하면 결국 이 업체에 의존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업체의 원전 관련 실적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 원전시장이 붕괴하면서 2015년부터 적자와 수주 부진으로 휘청였다. 일본제강소는 원전시장 붕괴로 인한 실적 저하와 손실을 원전 부문의 10배 규모의 실적을 내고 있는 정밀기계산업에서 만회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정밀기계류에서 신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중공업 대표 주자인 미쓰비시, 히타치, 도시바 역시 원전 부문에서 반세기가 넘는 경험과 설계역량, 정밀기술 등 많은 면에서 두중보다 앞선 업체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세계 원전시장 붕괴로 인해 지난 10년간 추진된 원전 수출에 실패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 결과 도시바는 원전시장에서 퇴출됐고 미쓰비시는 가스터빈 세계시장 점유율 강화, 히타치는 풍력발전과 차세대 직류송전에 주력하는 중이다.

이들과 비교해볼 때 두중은 그 전신인 한국중공업(한중) 시절부터 원전용 대형 단조부품에서 국가 독점 지위를 누려왔다. 후쿠시마 사고 후에도 모든 원전 건설사업이 중도 폐기된 일본에 비해 두중은 신한울 1, 2호기, 신고리 3, 4, 5, 6호기 사업으로 특별한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대형 단조는 일본제강소처럼 세계 각국으로부터 매년 수십건의 주문을 받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지 않는 이상 두중의 석탄화력 사업만큼 큰 실적을 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두중의 전신인 한중은 과거 중동지역 해수담수화설비 수출, 두중은 석탄화력 부문에서 원전 부문의 저조한 실적을 만회해왔다. 그러나 이들 부문 역시 각각 기술변화, 세계적 탈석탄 추세로 인해 과거만큼 실적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에 두중 역시 일본의 미쓰비시나 히타치처럼 현재 세계 발전설비 시장을 주도하는 가스터빈과 풍력에서 각각 기술 국산화, 시장 개척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사실 세계 원전시장 붕괴로 앞서 언급된 일본 업체들 각각이 입은 손실은 두중의 원전 부문 실적 하락의 몇배나 상회한다. 그럼에도 일본 언론은 국내 보수언론처럼 극성스럽게 신규 원전 건설이나 해외 원전 수출 지원을 주장하지 않는다. 국내 보수언론이 즐겨 인용하는 <마이니치신문>조차 일본의 해외 원전사업이 모두 실패한 후 2018년 12월25일 사설을 통해 세계적 추세를 못 읽고 무모하게 원전정책을 추진한 아베 정부를 질타하며, 이제라도 세계 추세에 맞춰 원전폐로 시장과 재생에너지 부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타일렀다. 국내 보수언론이 국내 발전설비산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물 안 개구리’ 식 논쟁을 중단하고 이미 오래전 변화한 세계 추세에 눈을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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