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EU 녹색분류체계, 혹 떼려다 혹붙인 원전업계

작성자: admin - 2022.02.04
사)에너지전환포럼 논평 “사람‧환경‧미래를 위한 에너지전환”
2022년 02월 04일 (금요일)즉시 보도가능합니다
배포 2022년 02월 0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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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훈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http://energytransitionkorea.org

 

EU 녹색분류체계, 혹 떼려다 혹붙인 원전업계

 

 

논평 요지

 

지난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집행위)가 원전과 천연가스발전에 대한 투자를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지속가능 금융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Green Taxonomy) 최종안을 발표했다. 이 최종안은 향후 4~6개월간 EU의회의 검토를 거쳐 과반수가 거부하지 않는 이상 확정되어 내년부터 시행된다. 원전을 포함시킨 최종안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회원국들은 물론 상당수 유럽 민간 및 기관 투자자들도 반대입장을 밝혀왔고 확정여부와 무관하게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은 국내 녹색분류체계도 EU 그린 택소노미를 참고해 원전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최종안은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책임 방침이 반영되어 있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국내 원자력계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고강도 방침이다.

특히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확보 및 운영 세부계획 제출과 심의조건, ‘사고저항성 핵연료사용 조건은 국내외 원자력계가 사실상 실현하기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그간 이 조항들의 삭제를 요청해왔으나, EU집행위는 사고저항성 핵연료적용시점만 2025년으로 연기했을 뿐 그 외 조항들은 최종안에 그대로 유지시켰다. EU 그린 택소노미는 금융지원 조건이지만 각국 전력시장의 참고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이 조항들은 오히려 향후 신규원전과 수명연장에 실질적인 규제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적 난제인 고준위 방폐장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핀란드와 스웨덴만 확보했고, 이들조차 반세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도 국제적으로 반세기동안 사용되어온 핵연료 설계와 원자로 설계코드까지 변경해 인허가과정을 거쳐야 하는 큰 변화로 개발시간과 비용은 물론 상용화여부조차 불확실하다. 따라서 국내 원자력계는 전후맥락과 내용을 무시한 채 'EU 그린 택소노미 원전포함'이라는 헤드라인만 떼어 'EU가 원전으로 회귀'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정부 역시 EU 최종안의 맥락과 내용의 체계적 검토와 함께 국내 녹색분류체계의 일관성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이하 배경설명 참조).

 

 

EU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의 배경설명과 포럼의 입장

 

EU 지속가능 금융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는 논란의 원전을 포함시키면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달았을까? 향후 이해당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에너지전환포럼은 표면적으로 알려진 EU 그린 택소노미의 원전포함 관련 논쟁과 세부 전제조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아래와 같이 세부 배경과 의미, 국내 원자력계에 대한 입장을 제시한다.

 

표면적인 갈등과 그 뒤에 숨은 전제조건들

 

지난 22, EU집행위는 그린 택소노미의 최종안을 발표했다. 원전을 포함시켜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어온 그린 택소노미 초안을 약간만 수정해 최종안으로 발표한 것으로 이 내용은 기후위임법의 보완법안에 반영되었. 그동안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서유럽국가들과 블룸버그, 에온(E.On) 등 민간 투자자들은 물론 기관투자자들도 반대해온 원전포함을 담은 법안은 이후 4개월동안 EU의회에 검토기간(필요시 2개월 연장)을 주고 의원과반(EU의회의원 353명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원안대로 통과된다.

이미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EU집행위를 EU조약의 기능관련 적법성을 다투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경고를 해왔고, 유럽의 상당수 민간 및 기관 투자자들도 문제제기해온 터라 이번 보완위임법안이 그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유럽각국 및 투자자들과 EU집행위간 갈등뒤에는 최종안이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문제가 있어 원자력계에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이 법안의 본문에는 ‘2050년 이전 핵폐기물 처분장 운영사고저항성 핵연료조건 등 원자력계가 실제로 투자하기 어려운 전제조건들이 있어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EU 보완위임법안이 안고 있는 모순의 배경과 의미

 

논란의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EU 보완위임법(CDA)안은 원전이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EU집행위 산하 공동연구센터(JRC)의 지난 20213월 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EU가 원전문제에 대해 전문적 검토를 맡긴 기관은 JRC만이 아니라, 그 이후 기술전문가그룹(TEG), 건강, 환경 및 신흥 위험에 관한 과학위원회(SCHEER), 각국 추천 전문가그룹(27개 회원국의 전문가 32) 3개 그룹이 더 있다. 3개 그룹은 공히 JRC의 검토결과가 중대사고시 발생할 피해에 대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평가했고, 사용후핵연료 등 핵폐기물 관리처분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이들의 진단은 JRC검토 보고서가 중대사고의 직간접적 영향의 범위를 축소해서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EU 보완위임법안의 상급법인 기후위임법의 중대피해방지(Do No Significant Harm, DNSH)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의미다.

EU 보완위임법안의 본문 역시 이러한 원전 위험평가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애초 JRCEU집행위로부터 수탁받은 평가기준(참고조건)이 위 3개 전문가그룹이 문제제기하기 이전에 설정되었기 때문에 JRC의 평가범위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원전 위험평가의 한계 인정은 EU집행위가 보완위임법안을 통해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면서도 기존보다 강화된 전제조건을 추가하게 만든 배경으로 보인다. 원자력계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확보 조건의 배경과 그 실상을 볼 필요가 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개발의 배경과 실상

 

국제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거의 모든 원전에 사용되어온 지르코늄 피복 핵연료는 효율은 높지만 사고시 화재폭발 위험문제를 지적받아왔다. 냉각에 실패할 경우 지르코늄 피복은 용융을 하거나 공기에 노출되어 산화반응해 화재를 일으킬 수 있으며, 핵연료내 축적된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고로 이어진다. 지난 드리마일(1979), 체르노빌(1986), 후쿠시마(2011) 사고 모두 지르코늄 피복이 용융이나 화재 및 폭발을 일으킨 사고였다. 또한 격납건물이 없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응해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19년부터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아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 핵연료 설계는 지르코늄에 크롬 계열의 코팅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 재료는 핵분열의 매개체인 중성자를 더 많이 흡수해 출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기존 5%이하의 농축우라늄 대신 6%를 적용했고, 핵연료 성분도 기존의 산화우라늄 대신 규화우라늄을 적용해 밀도를 높였다.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의 바이런 원전과 벨기에의 도엘 원전에 수 개의 핵연료 다발을 장전해 실험중이며, 2023년 보글 원전에도 4개 다발을 장전해 실험할 계획이다. 웨스팅하우스는 2020년대 중반까지 설계개발을 마치고 2030년경에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다.

그러나 껍질만 바꾸면 될 것 같은 이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복잡한 문제를 동반한다.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강정민 위원장은 핵연료 설계가 변경되면 원자로 핵설계 코드, 열수력설계 코드 등 원자로 안전운전과 관련된 컴퓨터 코드 시스템을 다 갱신해야 하고, 또 갱신된 코드가 안전한지 규제기관이 심사해 면허를 부여해야 한다. 그 뒤에도 기존의 핵연료 공장이 기존 제조공정을 변경해야하는 문제까지 이어져 실제 상용화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난 50년간 사용되어온 핵연료 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이 계획은 새로운 원자로 개발에 준하는 기간과 비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중인 실험들은 4~5개의 핵연료다발을 장전해보는 소규모 실험들일 뿐 실제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원자력 산업협회(FORATOM)는 지난해 말 초안 발표 이후 지난 1월 내내 EU집행위에 이 조항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EU집행위는 이번 최종안에 사고저항성 핵연료 조건을 2025년부터 적용한다는 조항만 추가했을 뿐 원안을 모두 유지해, FORATOM은 지난 2일 원자력계가 택소노미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2050년 이전 핵폐기물 처분장의 확보 및 운영 조건

 

이번 보안위임법안의 또다른 복병은 신규원전 및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국가가 EU 그린 택소노미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2050년 이전까지 핵폐기물(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고 운영할 세부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및 고준위 방폐물의 최종처분장을 확보한 국가는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 밖에 없다. 스웨덴은 사용후핵연료 처분부지 확보에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썼고, 앞으로도 운영을 하려면 2030년대에나 가능한 상황이다. 핀란드도 처분장 부지확보, 건설까지 40년이 걸렸다.

더욱이 두 나라 모두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세계최고 수준이고,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보유한 원전설비용량도 작아 매우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이번 EU 그린 택소노미 초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국가들이 과연 앞으로 30년 안에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을 건설, 운영할 세부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위임법안, 원자력계에겐 오히려 새로운 규제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럽 원자력산업협회(FORATOM) 등 원자력계는 이번 법안발표를 앞두고 EU집행위에게 핵폐기물 처분장 확보 및 운영 조건과 함께 이 사고저항성 핵연료조건을 삭제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 조건은 수정되지 않은채 원안대로 발표되었다. 때문에 FORATOM 측은 EU집행위의 법안발표 당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원전의 그린 택소노미포함을 환영한다는 첫 문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핵폐기물 처분장 확보조건과 사고저항성 핵연료문제가 원전에 대한 실질적 투자를 막게 될 것이라는 경고로 할애했다.

향후 EU의 이번 위임법안관련 남은 절차상, 이 문구의 수정은 불가능하며 법안의 찬반만 결정된다. 따라서 유럽의 원자력계는 이 법안이 발효되더라도 실제로 신규원전 및 수명연장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오히려 EU 그린 택소노미는 단순한 금융지원조건을 넘어서 향후 세계 전력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기능할 전망이어서, 원자력계에게는 강력한 규제요인만 늘어난 셈이다.

 

EU 그린 택소노미의 원전포함 관련 국내 원자력계의 주장과 포럼의 입장

 

국내 원전은 이번 그린 택소노미 논란이전에도 유럽이 요구하는 안전설계 기준과 큰 격차로 유럽전력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낮았다. 최근 준공된 핀란드의 올킬루토, 아직 건설중인 프랑스의 플라망빌, 영국의 힌클리포인트 원전은 모두 프랑스전력공사의 EPR원전으로 이른바 선진피동형에 코어캐처까지 적용된 국내보다 한세대 앞선 설계이다. 선진피동형이란 원전이 재난으로 정전상태에 들어가도 전력공급없이 자연대류와 중력을 사용해 원자로 노심을 지속 냉각시키는 설계개념이다. 또한 코어캐처는 원자로 노심이 용융하더라도 이를 더 확산시키지 않고 차단하는 설계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PR 원전들은 후쿠시마사고 이후 강화된 유럽의 안전규제로 인해 건설 공기가 무려 15년이상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이번 사고저항성 핵연료가 의무화될 경우 국내 원자력계가 수출할 유럽 원전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2050년 핵폐기물 처분장확보조건까지 담겨있는 이번 EU의 보완위임법안의 엄격한 전제조건들을 감안할 때, 단순히 유럽사례를 근거로 국내 분류체계에도 적용해 원전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원자력계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또한 우리 정부 역시 안과 밖에서 지속가능성 부합 논란을 낳고 있는 EU 보완위임법안에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이미 구축한 녹색분류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해 대내외적인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녹색분류체계의 시작은 EU가 먼저였지만, 일관성과 신뢰성을 유지해 국내에서 먼저 실효적인 지속가능 금융체계를 이행하기를 권고한다.

-이상-

 

논평 원문: http://energytransitionkorea.org/post/4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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