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강화개인결과물] 현유정-'소외 없이 상통하는 공정한 전환을 위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다.

작성자: yurilemon - 2021.02.11

1/11부터 1/19동안의 역량강화프로그램이 끝났다.

주말을 제외하고 정확히 7일 동안 이루어진 프로그램은 대개 9시 반에 시작해 5시 반에서 6시 반 정도에 끝났고 굉장히 지치는 일정이면서도, 알차고 재밌었다.

프런티어 활동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역량강화프로그램은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강의가 중심일거라고 생각해 강의에 대해서만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 강의들 뿐 아니라, 각 강의를 듣고 얻게 된 인사이트(insight)를 정리하는 시간, 팀을 꾸리기 위해 관심 분야에 대해 탐색하고 대화하는 시간, 팀이 꾸려진 이후 탐구 주제를 구체화하고 현장 답사 대상을 탐색하는 시간 등이 있었다.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거치며 경험한 것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처음에 지원하면서 썼던 관심 분야와 실제로 선택하게 된 분야가 달라졌다. : 내가 선택하게 된 분야는 '정의로운 전환'

2. 국내외의 여러 전문가들에게 강의를 들었는데, 굉장히 배울 것들이 많았다.

3.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구체화시키고 현장 답사의 윤곽을 잡는 과정이 꽤 어려워서, 자료 탐색, 멘토링(mentoring), 문제 정의 및 구체화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했다.

먼저 첫 번째 경험을 살펴보자.

 

1. 처음에 지원하면서 썼던 관심 분야와 실제로 선택하게 된 분야가 달라졌다.: 내가 선택한 분야는 '정의로운 전환'

 

나는 분명 지원할 때에는 에너지저장장치에 대한 보조금 (정확히는 REC가중치부여제도) 제도가 왜 없어지는지,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했고, 또 풍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부각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 문제들을 어떻게 조정해 갈등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관심 주제를 펼쳐놓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에는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sition)이란, 쉽게 말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문제를 해소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미국에서 먼저 발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로 탈석탄으로 인해 발생하는 석탄 화력발전 노동자들의 실업 문제를 다룬다. (원자력 발전소 폐쇄 예정 지역이 있다면, 원자력 발전 노동자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누군가는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사회가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고통 분담이 있어야 사회적 갈등이 조정되어 더 빠른 에너지 전환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를 골랐다. 그리고 사실 결정적으로, 제레미 리프킨(Jeremy Lefkin)'글로벌 그린 뉴딜(Global Green New Deal)'에서 신재생에너지 등 신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라 발생하는 실업자에 대한 정책도 그린 뉴딜에 포함된다는 견해를 읽었기 때문에, 그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실업 문제에 대한 대책은 별로 안 세워놨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 자체는 면접 때 처음 들었다. 당시에 한 면접관이 "다들 지원서에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을 많이 써놓았던데 무슨 의미로 쓰신 것인지 말해달라."라고 질문했던 것도 생각난다. 나는 그 용어를 잘 몰라서 주민 수용성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말이 많이 나왔는데, '정의롭다'는 말이 포함돼있다 보니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고통에 대한 분담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사양 산업이 될 각종 산업 분야에 대한 배려, 재생에너지 설비 부지를 내주어야 하는 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복지 정책 등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했다. 대화를 나누어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단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고, 사실 지금도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는 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팀에 들어와 자료 조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주체를 하나 잡다보니 '일자리 문제, 특히 석탄화력발전소의 일자리 문제를 다루자!'로 좁혀지게 되었다.

 

2. 국내외의 여러 전문가들에게 강의를 들었는데, 굉장히 배울 것들이 많았다.

 

역량강화프로그램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전문가의 강의'였다. 11개의 강의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중 4개는 유럽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좋았다!

 

항상 환경 문제, 기후위기에 대해 정보를 많이 얻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떤 공부를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고 신문기사는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책은 좋은 정보를 많이 담고 있지만 현안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대응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조가 필요하다는데, 도대체 그 분야들이 무엇인지, 거기서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느껴 답답했다. 그런데 11개의 전문성 높은 강의를 듣다보니 궁금했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앞으로도 공개 강의나 포럼 발제 등을 찾아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분들이 모두 개인적으로 질문해도 좋다고 했다!

 

새로 알게 된 모든 정보들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크게 세 가지는 적어보고 싶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 전체 에너지에서 전기의 비중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높여야 하며, 그 전기는 탄소 배출 없는 방식으로 생산되어야 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2) 탄소 배출 없는 방식, 즉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력시장의 개편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3) 이러한 변화는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의 일부분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가 이번 강의를 통해 배웠던 것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이 모두 굉장히 많은 생각할 거리, 탐구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리 팀은 3, 빠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분담에 대해 집중했으며,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탐구하기로 했다. 이 주제는 일반적으로는 관심이 덜하지만,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해 우리 팀원들은 이 선택에 꽤 자긍심을 갖고 있다.

 

3.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구체화시키고 현장 답사의 윤곽을 잡는 과정이 꽤 어려워서, 자료 탐색, 멘토링, 문제 정의 및 구체화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주제를 택한 우리 팀은 사실 논의 초반기에 개념도 헷갈려했고 탐구 주제를 구체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 팀 토론을 할 때에는 '탈석탄으로 실업을 겪게 된 사람들을 다뤄보자', '전력시장이 개편되면 에너지 빈곤층이 타격을 입을 텐데 에너지 복지정책에 대해 다뤄보자', '재생에너지 도입에 반대하는 지역주민에게 어떤 보상이 필요할지에 대해 다뤄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보고 관심사를 정하다 보니 다루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노동 문제에는 관심 없던 팀원이 다른 팀으로 옮겼고 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또 자료 탐색 결과 '정의로운 전환'이 일반적으로 노동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서 탈석탄에 따른 실업 문제로 주제를 좁히게 되었다.

 

각 팀에게는 전문가 멘토가 도움을 주게 되는데, 멘토님의 조언이 방향을 잡고 자료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팀에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연구를 해 오신 박진희 멘토님이 배정되었는데, 역량강화프로그램 기간 중 1시간 정도 멘토링 시간이 있었다. 멘토링이 있는 전날 밤, 우리는 일단 관심 분야를 석탄노동자 실업문제와 에너지 복지 문제로 잡았고, 어떤 것을 물어봐야 할지 팀원들과 미리 정해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사실 관심만 있고 아는 것은 없는 상태여서,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누구를 대상으로 현장 답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다 보니 질문의 양이 꽤 많았다. 그런데 멘토님이 질문을 찬찬히 보시면서 각 주제에 대한 주요 쟁점과 논리를 설명하셨고, 어떤 연구를 찾아보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셔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멘토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정확히 정의한 후 답사 계획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은 우리의 탐구 주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질문이 무엇인지 정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누구를 만나봐야 하는지 정하는 작업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석탄발전소 실업'에 대해 탐구하자고 정하니, 해외 사례도 여럿 찾아야 할 것 같고, 이미 탄광은 폐쇄되어 그에 대한 보상을 한 사례가 있으니 구 탄광촌도 찾아가 힌트를 얻어야 할 것 같고, 발전소 노동자도 많이 만나봐야 할 것 같고,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 것 같고 정책 주체와 연구원들도 만나야할 것 같고 해서 너무 살펴볼 것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료를 찾아 공부를 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수차례 문제정의 및 구체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버릴 것은 버리고 탐구 주제가 좁힐 수 있었다. 각 프로그램은 문제 정의를 위한 방법론을 배우고 실습도 하면서 계획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운영진이 진행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이틀 동안은 전문 업체 MYSC에서 진행하며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역량강화프로그램 기간 동안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는 것은 무리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회의하며, 더 자료를 찾아내고 현장 답사 대상을 정해나갈 것이다. 아직까지는 팀원들과 잘 소통하면서 원활하게 과제를 해나가고 있는데,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인터뷰 질문을 만들고 실제 인터뷰를 해내는 일들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져,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진행해나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동안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느껴졌던 각종 이슈들과 우리 팀의 문제 정의도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니 생각보다는 먼 길을 훌쩍 건너왔다. 아마 앞으로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차근차근 공부하고 고민하고 팀원과 소통하면서 길을 찾아나가고 싶다.